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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재학 코오롱 등산학교 교장
[인터뷰] 윤재학 코오롱 등산학교 교장
  • 강우영 기자
  • 승인 2018.05.01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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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 위해 산에 오르죠”
윤재학 교장이 2008년 6월 용화산에서 오버행 구간을 등반하고 있다. 사진제공 윤재학
윤재학 교장이 2008년 6월 용화산에서 오버행 구간을 등반하고 있다. 사진제공 윤재학

코오롱 등산학교 3주 차 교육을 마치고 백운대에서 내려가는 중 누군가가 기자를 지나쳐 쏜살같이 내려간다. 윤재학 코오롱 등산학교 교장이다. 기자가 힘을 내 윤 교장의 뒤를 따르지만 따라잡기는커녕 거리만 점점 더 벌어진다.

윤재학(68) 교장은 정규반 학생들이 백운대에 오르면 항상 함께 오른다. 강사들의 교육과정을 지켜보거나 자신이 직접 강의를 하기도 한다. 학생들과 함께 암벽에 오르고 땀 흘리고 함께 식사한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인수봉과 선인봉에 오른다.

코오롱 등산학교 정규반 5주차 교육이 시작되는 4월 28일 선인봉에서 하산한 윤재학 교장을 만났다.

코오롱 등산학교와의 인연

윤 교장은 코오롱 등산학교가 문을 연 뒤 1기 교육생으로 인연을 맺었다. 7기부터는 강사를 맡았고 2015년에는 이용대 교장으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아 코오롱 등산학교 교장이 되었다.

윤 교장은 1975년 대한전선 전자사업부에 입사하면서 암벽등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사내 산악회에서 활동했던 회사 동료가 사보 표지에 실린 것을 보고 등반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당시 회사 동료였던 김병준(대한산악연맹 전 감사) 씨가 에베레스트에 오른 사진이 회사 사보 표지에 실린 거예요. 그걸 보는데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1981년에는 우연히 들른 등산 장비점에서 발견한 한국등산학교 포스터를 보고 정규반에 등록하면서 정식 클라이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정호진(넬슨스포츠 대표) 씨가 당시 코오롱 등산학교 교무로 근무하면서 윤 교장에게 입학을 권유했고 1985년 코오롱 등산학교(개교 당시 레스코 등산학교) 1기 정규반에 들어가면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윤 교장이 첫 교육생으로 코오롱 등산학교에 들어온 지 30년이 넘었다. 그때와 지금은 사람도 문화도 많이 다를 듯했다.

“당시만 해도 (등반의) 체계가 없었지요. 규제도 없었으니 자유롭게 취사도 가능하고 등반도 가능했어요. 자유로워서 분위기도 상당히 좋았어요. 지금처럼 산을 훼손하는 일도 없었고 경쟁의식도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일단 산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지금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다툼도 생기고 좀 혼탁해졌다고 할까요.”

코오롱 등산학교는 다른 등산학교와는 다르게 이론도 중시한다. 등반의 체계를 갖추고 과목을 세분화했다. 조별 교육을 최초로 시도해 차별화를 꾀했다. 등산의 역사와 문학, 지금은 과목에서 빠졌지만 산노래 교육까지 다양한 과목도 눈에 띈다.

등산학교 나이 제한을 풀다

코오롱 등산학교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이 제한을 풀었다. 윤 교장은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당시 코오롱 등산학교가 40세 이하만 받았거든요. 한번은 전화가 왔는데 다짜고짜 나이 제한을 풀라는 거에요. 본인이 45세라서 들어갈 수 없으니 나이 제한을 풀라는 거에요. 그러면서 당장 본인하고 턱걸이 시합을 해보자는 거에요. 등반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거죠(웃음).”

나이 제한에 걸린 사람들이 학교에 들어오기 위해 당시 이용대 교장에게 청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코오롱 등산학교는 이러저러한 이유와 등산 인구의 급증으로 자연스럽게 나이 제한을 풀게 됐다.

윤재학 교장

“독일 병정도 별수 없구만”

윤 교장은 노장이지만 암벽과 빙벽 모두 최고 수준의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 2004년 설악산 장군봉 남서벽을 개척등반하는 등 국내에서 다양한 암벽등반을 섭렵하고 요세미테에 빅월등반을 다녀오기도 했다. 2000년도부터 2003년까지 빙벽등반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하는 등 빙벽등반도 수준급 실력자이다. 작년에는 중국 라오산 황산고 암벽루트를 강사들과 개척등반에 나서기도 했다.

등산학교 양유석 교무는 “30년이 넘는 동안 등반에 대한 열정이 단 한 번도 사그라지지 않으신 분이시죠. 등산학교에 대한 사랑도 그렇고요. 인자한 인상 뒤에 숨겨진 등반에 대한 어마어마한 열정이 있는 분이세요.”라고 말했다.

이러한 윤 교장도 다른 등반가들과 마찬가지로 사고와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2002년 구곡폭포에서 빙벽등반을 하던 중 선등자가 추락하면서 윤 교장을 덮쳤다. 당시만 해도 서울근교에서 빙벽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구곡폭포였기 때문에 많은 등반가가 몰리는 시기였다. 선등자가 그대로 윤 교장을 덮치면서 추락했고 이 사고로 윤 교장은 쇄골과 갈비뼈 4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3개월 동안 등에 보조장치를 달고 지내야 했는데 앉아서 잠을 자야 할 정도로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더 괴로운 것은 산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산에 갈 수 없어서인지 이듬해 위암 선고까지 받았다.

“1년 동안 등산을 하지 못했죠. 속상해서 친구들과 술도 좀 먹고 그랬지요. 그렇게 1년을 보냈는데 어느 날 소화가 안 돼서 병원에 갔더니 위암이라는 거에요.”

윤 교장은 위 전체를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그 후로 음식을 섭취하면 소장이 소화를 시킨다. 과식은 금물이다. 지금도 산에 오르면 김밥 한 줄을 네 번씩 나눠 먹어야 한다. 당시 지인들은 그의 암 선고를 충격이라고 할 정도로 놀랐는데 그의 별명이 ‘독일병정’이기 때문이었다. 매사 자신에게 철두철미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생업과 운동에만 전념했고 담배도 안 피우고 술은 절제했지요. 사람들이 이런 저를 보고 스탠다드, 독일병정이라고 불렀어요. 그런데 결과가 이렇게 되고 보니 사람들이 모범적으로 관리해도 별수 없다고 놀렸지요(웃음).”

재작년에는 장폐쇄증에 걸려 또 한 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3개월 이상 정기검진을 받아야 한다며 등반을 하지 말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한 달 만에 다시 산에 올랐다. 클라이밍을 하고 싶어서 아픔을 참고 컨디션 회복에 나섰더니 한 달 만에 좋아졌다고 한다. 지난 1997년도에는 울산암을 등반하고 내려오는 길에 왼쪽 무릎인대가 끊어져 6개월 동안 재활하는 등 부상도 입었다. 하지만 자신의 부상보다 더 가슴 아픈 건 졸업한 학생들이 사고를 당할 때이다.

“졸업한 학생 중에 저와 함께 등반을 같이하던 젊은 친구가 있었어요. 등반을 아주 잘했어요. 근데 수락산 내원암 암벽에서 등반하다가 같이 갔던 후배가 빌레이를 잘못 보는 바람에 추락해서 숨졌어요.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지요.”

윤 교장은 30년 등반 인생에서 수많은 사고를 목격했다. 등산학교 강의에서도 ‘안전’을 최우선 과목에 놓은 이유다. 특히 누구와 함께 등반하느냐도 대단히 중요하게 강조한다.

“등반하는 사람들은 더 높이, 더 멀리 가고 싶은 꿈이 있어요. 그래서 히말라야에도 가고 그러지요. 하지만, 혼자 하기는 어려워요. 동행이 필요하고 역할 분담이 필요해요. 누구와 가느냐도 정말 중요하지요.”

“내 인생의 롤모델 이용대 교장선생님”

이용대 명예교장과 함께 인수봉에 올라 찍은 사진. 사진제공 윤재학
이용대 명예교장과 함께 인수봉에 올라 찍은 사진. 사진제공 윤재학

윤 교장은 2015년 이용대 교장을 이어 코오롱 등산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이용대 전 교장은 명예교장으로 추대됐다.

윤 교장과 이 명예교장과의 첫 만남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윤 교장은 막 한국등산학교를 졸업하고 동기들과 설악산 산행을 위해 백담사를 찾았다가 이 명예교장을 처음 만났다. 이 명예교장은 산악잡지에 칼럼을 쓰는 등 등반가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인사였다. 당시 윤 교장이 백담사에서 내려오는 이 명예교장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제가 이용대 선생님을 딱 알아보고 인사를 하니 선생님이 대뜸 ‘어디서 온 애들이야?’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그 말이 제가 듣기에는 ‘니들은 어디서 온 떨거지들이냐?’라고 들리더라구요(웃음).”

산악문학을 강의한 심산 강사는 이 명예교장의 별명이 ‘송곳니’라면서 무엇이든지 씹는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알려주었다. 이 명예교장의 별명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2015년 등산학교 교장 이취임식 때 윤 교장은 눈물을 흘렸다. 이 명예교장과 30년 넘게 동거동락하면서 함께 줄을 묶고 등반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면서 감회에 젖었다고 했다.

“교장직을 넘겨받는데 이용대 교장선생님도 연세가 많이 드셨구나,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이런저런 생각이 났어요. 지난 세월이 아쉽기도 하고…. 선생님이 하룻재 고개를 넘다가 인생이 다 갔다고 하시는 말씀도 생각이 났고요.”

이 명예교장은 85년 개교 이래 12년 동안 대표 강사를 지냈고, 97년 등산학교 교장이 되었다. 윤 교장과 이 명예교장은 강사와 학생으로 만나 교장과 강사로 연을 이어왔고 다시 한번 교장까지 함께하는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윤 교장은 30년이라는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혼난 적은 없다고 했다. 아마도 완전무장한 독일병정의 철모가 송곳니를 잘 피한 듯싶다.

“13살이나 많은 큰형님같은 분이지요. 이용대의 삶을 보고 이것도 따라 하고 저것도 따라하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겠다고 항상 생각하면서 살았지요. 사실상 저의 롤모델이에요.”

“행복하기 위해서 산에 오르죠”

윤재학 교장이 정규반 학생들에게 등반의 기초를 가르치고 있다. 강우영 기자
윤재학 교장이 정규반 학생들에게 등반의 기초를 가르치고 있다. 강우영 기자

윤 교장은 현재 등산학교 정규반 과정에서 등반의 기초를 가르치고 있다. 등반을 안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생들을 가르쳐서 산에 보내는 일이 그가 등산학교에서 교육하는 주된 목적이다. 그는 등반에 목숨을 걸거나 인생을 걸고 하라고 권유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해발 2,000m 이상인 산이 없어요. 만년설도 없지요. 결국, 우리나라에서 산에 가는 것은 걷는 산행과 암벽 등반뿐이지요. 암벽 등반에 목숨을 걸고 할 필요없어요. 산에 가는 건 행복하기 위해 가는 것이니까요. 못 오른다고 해서 탓할 필요도 없어요.”

정규반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빼놓지 않았다.

“산에 올라 물 한 모금 마시고 음식도 먹으면서 산과 자연을 음미해 보세요. 그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사람들은 이런 일상의 행복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산에 오르면 세상이 아름다워져요. (왜냐하면) 산에 오르면 사람의 심성이 착해져요. 착한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히 세상이 아름다워지는거죠(웃음).”

30년 등산전도사의 철학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끝으로 언제까지 산에 다니겠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용대 선생님이 산에 오르신 만큼 다닐 계획이에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