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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과 분수령… 백두대간
독립과 분수령… 백두대간
  • 강우영 기자
  • 승인 2019.02.21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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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9일 설악산 대청봉에서 바라본 운무. 강우영 기자
지난 1월 19일 설악산 대청봉에서 바라본 운무. 강우영 기자

1945년 8월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2개의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이 원자폭탄은 한 순간에 20여 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우리에겐 독립을 선사했다. 36년의 억압에서 벗어났지만 독립운동가들은 감격의 눈물이 아닌 통탄의 눈물을 흘렸다. 왜 그랬을까.

교수 겸 시인인 산악인 김창호 씨가 쓴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를 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시몬느 드 보봐르의 수필집 <피리우스와 시네아스>에 이런 귀절이 나온다. 나그네가 시골길을 가다가 나무 밑에서 울고 있는 어린이 하나를 발견한다. 여러모로 달래던 끝에 마침내 나그네는 지레 ‘하아 이놈이 나무에 올라가지 못해 그러는구나!’하고 생각하고 어린이를 번쩍 들어 가지 위에 거뜬히 올려 놓아준다. 그랬더니 좋아라 하기는커녕 이번에 어린이는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울음보를 터뜨린다. 왜 그랬을까. 보봐르는 이 한마디를 달아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아이가 나무에 오르고 싶어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무엇보다 거기를 제힘으로 오르고 싶었던 것이다.”

어린아이도 제힘으로 나무를 오르고 싶어했는데 하물며 독립이야 더 할 말이 없었을 듯싶다. 독립운동가들의 눈물은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을 스스로의 손이 아닌 남의 손을 빌어 이뤘기 때문이다.

철학자 도올은 최근 TBS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김구와 독립운동가들은 일본 원자폭탄이 터지고 울었다. 해방의 주체적인 역할을 해야 되는데 그 기회가 유실되어서 통곡을 했다. 독립을 우리의 손이 아닌 남의 손으로 해방을 이뤘기 때문이다.”

해방은 되었지만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미군정이 바로 들어섰다. 이승만은 권력쟁탈을 위해 일본의 편에 섰던 인사들을 다시 기용했다. 광복은 됐지만 역사청산은 이뤄지지 못했고 친일의 잔재는 아직까지 우리나라 곳곳에서 기승하고 있다.

산맥은 일제의 잔재, 대간·정맥으로 바꿔 써야

산맥신문 제호의 ‘산맥’은 일제 잔재라고 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산맥이라는 단어가 일제 잔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도 그렇고 교과서의 소백산맥도 그렇고 내가 아는 산맥은 우리가 사용해왔고 통용되는 단어라고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송종복 경남향도사연구회장은 지난 2017년 경남매일 기고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 온 태백산맥,소백산맥 등 `산맥(山脈)`은 1903년 일본인 지질학자 `교토 분지로`의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를 다시 한국의 교과서인 <한국지리>에 일본인 `야스 쇼에이`가 재집필해 교육시켰기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 산맥으로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일제식민 잔재다. 19C 초 고산자 김정호(1804~1866)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분수령(分水嶺)이란 용어가 나오지만 산맥(山脈)이란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산맥이란 용어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인데 아직도 많이 쓰고 있다.”

사실 산맥이라는 제호가 일제 잔재라는 걸 안 것은 지난해 코오롱 등산학교 양유석 교무를 통해서다. 당시 양 교무는 지나가는 말로 “산맥은 일제 잔재인데 왜 이런 제호를 쓰셨을까...”라며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나에게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에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암벽에서 20m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실제로 경험해보지 못한 추락을 경험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발에서 힘이 빠지고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오버행 구간에서 추락해 대롱대롱 매달려 오도 가도 못한 느낌이었다. 어지러이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독립한 것과 독립이 되어진 것은 이처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기실 독립은 되었으나 과거는 청산되지 못했고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조차 일본의 잔재인 것이다. 등반의 역사와 기술도 대체로 일본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더 많은 일본 잔재가 등반의 역사에 숨어 있을 것이다.

산맥신문은 부끄러움을 밝히고 제호를 바꾸려고 준비 중이다. 오는 3월은 산맥신문이 나온 지 1년이 되는 해이다. 의욕만 넘쳐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시작한 일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전문성도 부족하고 어느 방향으로 향해 갈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산은 갔으되 산을 몰랐다. 처절하고 통렬한 반성이다.

다만, 등산학교에서 등반을 배웠고 산을 배워가는 중이다. 등산학교에서 만난 선생님과 특히 함께 등반했던 선후배 동료들이 있어 큰 위안이다. 나에겐 커다란 산만큼이나 든든한 분들이다. 

산맥신문은 올해를 분수령으로 삼아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 하루하루 새롭게 태어나는 한 해가 되겠다고 태백산맥이 아닌 백두대간의 산줄기인 설악산 대청봉에서 다짐해 본다.